문재인 "토건사업 재검토"  안철수 "하위 5% 건보료 면제"…성장은 외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11일 일제히 선거 공약집을 발표했다. 발표 시간도 오전 11시로 같았다. 단일화를 앞두고 서로를 의식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안 후보는 서울 공평동 선거 캠프에서, 문 후보는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각각 발표회를 가졌다.

안 후보는 ‘안철수의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7대 비전, 25개 정책과제, 171개 정책약속, 850여개 실천과제가 포함돼 439페이지에 달하는 단행본을 냈다. 문 후보도 ‘5개의 문(일자리혁명 복지국가 경제민주화 새정치 평화와공존)’이란 주제로 이미 발표된 24개 부문의 핵심 공약들을 63페이지짜리 소책자로 정리했다.

경제민주화 복지 한반도평화 등 분야마다 두 후보 간 정책 기조에 큰 차이는 없었다.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 0~5세 무상보육, 대학 반값등록금 등과 같은 상당한 재원이 필요한 공약도 다수 내놨다. 그러나 구체적인 재원 조달방안은 나중에 발표하겠다고만 해 현실성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文·安 성장 전략은 부재

두 후보는 이날 성장 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밝히지 않았다. 지난 3분기 경제성장률이 연 1.6%를 기록하는 등 ‘저성장 쇼크’가 현실화됐지만 이를 타개할 구체적인 대책에 대해서는 양 후보 모두 함구하고 있다. 대신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내수를 늘리겠다는 식의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실제 문 후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지금까지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만을 생각했다”며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통해 창출된) 일자리가 소득을 늘려 내수가 확대되면 자연스럽게 경제 성장을 이끄는 하나의 선순환을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대규모 토건 사업은 타당성을 철저히 따져 추진 여부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안 후보 역시 “경제민주화와 혁신경제로 만들어진 가치가 골고루 나눠지면서 (대한민국이라는 큰) 나무의 전체를 성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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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원대책은 “나중에”

복지 분야에서 두 후보는 막대한 재원이 소요될 각종 공약들을 경쟁적으로 제시했다. 내년 기준 어림잡아 10조원 가량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는 0~5세 무상보육 실시와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국회입법조사처, 향후 5년간 65조9120억원 추가 예상),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저소득층 건강보험료 면제, 대학등록금 반값 실현 등이 공통적으로 포함됐다.

그럼에도 두 후보 측은 이 같은 공약들을 실현하기 위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두 침묵했다. 각 정책마다 소요될 비용이 얼마인지에 대한 추계조차도 전혀 내놓지 않았다.

문 후보 캠프의 이용섭 공감1본부장은 “공약이 계속 발표 중인 단계인 데다 단일화 과정이 남아 있어 전체 재원 규모를 밝히기 어렵다”며 “재정 개혁을 통해 예산을 절감하고, 감세 철회 등 조세 개혁을 통해서도 충분히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 후보 캠프에서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장하성 국민정책본부장은 “캠프 내에서 정부예산을 다뤄본 경험 있는 전문가들이 팀을 꾸려 재정추계 작업을 하고 있다”며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지나치게 낙관적 전망”

두 후보 모두 엄청난 정부 예산을 필요로 하는 사업을 공약으로 내건 만큼 사실상 증세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문 후보는 “지금 수준보다는 어쨌든 증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후보 측 경제정책 실무를 총괄하는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비과세 감면 정비 등을 통해 사실상 실효세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경제신문 대선공약평가단에 참여하고 있는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올해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 세수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면서 “대선 후보들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비판했다.

그는 또 “어떤 정책을 발표하기에 앞서 재원 조달 방안부터 제시해야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며 “특히 제대로 된 성장전략도 내놓지 않고 어떻게 앞으로 복지 재원을 마련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